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쿠가와 츠나요시 (문단 편집) === 사망 === [[1709년]]에 향년 63세로 사망했다. 유언은 >"100년 뒤에도 이 법이 존속되게 하라" 였지만, 그가 죽은 후 <생류연령>은 10일 만에 폐지되었다.[* [[사문화]]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관리들이 봐도 모른척 한 것. 바로 문서상으로 지워버리면 [[막부]]의 권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는 말도 있다. 이런 조치의 경위도 유지시키는게 옳지만 천하 사람들이 너무 괴로워한다는 이유인걸 보면 어쨌든 그냥 없애기엔 모양새는 안 섰던 모양.][* 다만 법 자체는 허무하게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래도 뒤를 이은 이에노부는 <생류연령>과 능묘 재건사업 외의 정책은 그대로 이어받았고, <생류연령>은 철회했지만 그 정신은 계승하려고 했다. 성향이 상당히 비슷한 면도 있었으니 그럴 만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생전에 사이가 그리 좋진 않았다고 한다. 츠나요시 재위시절 어느날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삼촌 츠나요시와 조카 이에노부는 서로 껄끄러워 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생류연령>이 당대에 얼마나 악명높았는지 그것이 폐지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서민들의 지지가 높아졌다고 한다.] 사인은 [[천연두]]로 알려졌다.[* 다만 다른 기록에 의하면 정실(미다이도코로)인 노부코가 츠나요시를 어떤 방으로 오게 한 뒤에 무리심중, 즉 강제 동반자살의 형태로 죽었다는 의혹도 있다. 실제로 노부코는 츠나요시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는데 사망 기간이 밀접한지라 이런 의혹이 제기된 걸로 보인다. 물론 명확한 증거는 없기 때문에 그저 설일 뿐. 정실인 노부코와 사이가 안좋았던게 이런 소문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아들은 측실 오덴노카타(お伝の方)로부터 낳은 도쿠마츠(徳松)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 도쿠마츠의 탄생 축하 행사가 [[11월 15일]]에 이루어지면서 [[시치고산]]의 유래가 되었다고들 한다.] 츠나요시가 [[쇼군]]이 되기 전에 일찍 죽었다. 이 아들만 건강하게 살아있었더라면 그 소동은 안 일어났을 것이다. 어쨌든 직계 자손이 없다보니 후계자는 츠나요시의 이복형제의 아들이었던 츠나토요(이에노부)가 지명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노부]]와 이에노부의 아들인 [[도쿠가와 이에쓰구]](재임 1713~1716)도 얼마 못가 죽으면서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직계 후손은 대가 끊겼고, 이후에는 방계인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제8대 쇼군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